
An 85-year-old graduate at Sookmyung Women’s University became Korea’s oldest college degree recipient this year after earning an associate degree in social welfare from the university’s Future Education Institute. She completed seven years of study, beginning at age 78 to learn literacy, and enrolled in higher education in 2024 with the aim of pursuing a bachelor’s degree.
The graduate, who grew up during the Korean War and worked in various low-wkage jobs to support her family, described education as a distant dream until a spine hospital visit led to exposure to an adult literacy program. She subsequently learned to read and write, completed middle and high school programs, and took the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for the 2024 academic year.
Despite chronic back pain and a lengthy daily commute, she attended classes three times a week, often writing reports by hand because typing was difficult. She described the early months as challenging but said she gradually understood the coursework and remained committed to attending every class.
During the ceremony, she reflected on the support from classmates who helped her with meals, transportation, and carrying heavy textbooks. Her granddaughter, now also a graduate of the same university, attended the event, prompting family humor about being colleagues at the institution.
The graduate expressed a desire to continue her studies in the institute’s child welfare program to pursue a four-year bachelor’s degree, with the goal of bringing hope to children facing hardship. She also noted an ongoing effort to improve her English to converse with grandchildren living in the United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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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련여자대학교의 85세 최연소 학위 수여자가 표지판 없이 떠나지 않는 노력을 보여주며 학위 수여식 무대에 올랐다. 올해 국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대학 학위 수여자로 인정받은 김정자(85) 씨는 사회복지학 부전공 학위를 받으며 7년간의 학업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녀는 78세에 처음 한글 읽고 쓰기를 배우며 시작한 도전이다.
수상식이 열린 강당은 박수로 가득 차고 김씨는 감동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 순간은 여기서 배운 모든 것과 함께 공부하고 응원해 준 친구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1941년생으로 8남매 중 맏이였던 김씨는 한국전쟁 중 가족이 전쟁 피해를 피해 왜도도에 피난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라왔다. 그녀는 옛날에는 여학생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흔하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손가락 손톱이 닳아 없어질 만큼의 힘든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고 회상했다. 가사일, 도시락 공장, 목욕탕 등 pay가 되는 anything를 하며 살았다.
평생 가족과 세 자녀를 부양하느라 교육은 멀리 있던 꿈이었다. 그 과정에서 척추가 심하게 휘는 등의 수술을 세 차례 받기도 했다.
그의 전환점은 70대 후반에 찾아왔다. 공항에서 딸을 배웅하러 갔을 때 탑승구 표지판을 읽지 못한 일이 창피했고, 여름에 척추병원을 방문한 뒤 거리에 서 있던 성인이 문해학교를 홍보하는 부채를 보며 학습의 기회를 접했고 몇 달 뒤 등록했다.
그 뒤로 삶은 다시 피어났다. 김씨는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중·고등학교 과정까지 졸업하며 2024년 학력평가(수능)의 최연소 응시자로 기록됐다. 이후 2024년 수목련여자대학교 미래교육원에 입학해 손주가 졸업한 같은 대학으로의 꿈을 이루었다.
2년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만성 요통과 통학에 시달리면서도 매주 화·목 또는 수업이 있는 날엔 새벽에 집을 나섰다. 오전 9시 수업에 맞추려면 이동이 불편해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떠나야 했다.
처음 몇 달은 힘들었지만 곧 교수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중요한 부분을 밑줄 긋고 집에 가서도 손으로 모든 내용을 적었다. 타이핑이 불가능해 three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매일 손으로 작성했고, “천천히 했지만 한 수업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교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아침과 점심을 먹었고, 카페테리아까지 걸어갈 수 없어 교재를 집에서 쓸 두 권으로 나눠 들고 다녔다. 학우들은 책 가방을 옮겨 주고 지하철역까지 동행해 주는 등 배려를 보여 주었으며, 야간 수업 후 택시를 잡아주기도 했다. 이러한 친절은 앞으로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유머를 잃지 않았다. 이제는 같은 대학의 동문인 손주가 자주 농담으로 “할머니가 제 동생이다”고 말하자, 김씨는 “환영한다, 선배님”이라고 응답하곤 한다.
학업을 통해 김씨는 타인 돕기에 대한 열정을 발견했다. “필요로 하는 만큼 제대로 배우는 것이 좋다고 느꼈다. 나 자신도 복지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어 그 이해를 원했다.” 또한 손주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영어 공부도 지속해 왔다.
수목련대학의 문시연 총장은 김씨와 동문들의 삶의 헌신을 칭찬하며 “시간의 흐름만으로 얻은 성취가 아니다. 견고한 용기의 결실이고 학습에는 연령의 한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도 미래교육원의 아동복지학과에서 4년제 학사 학위를 계속 pursuit할 계획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전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연필을 잡고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했다.